가짜논리

줄리언 바지니

<가짜 논리>는 영국의 시사 사례를 빗대어 허술한 논증이 얼마나 큰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지 알려준다. 아울러 누군가의 논리성에 건설적인 의구심도 키울 수 있다.
저자는 간명한 문체로 확신에 찬 주장을 하면서도 글의 끝머리엔 좋은 논증과 부실한 논증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질문을 던진다. 이를테면 ‘권리를 가지는 것과 누리는 건 다른 이야기’ 꼭지에선 미디어 영향력을 가진 비전문가가 독자적인 의견을 가질 순 있지만, 그것을 적극적으로 설파할 권리는 없다고 말한다. 의견 개진이 유해한 결과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구나 의견을 가질 수 있다.”라는 말에서 의견을 ‘가지는 권리’와 ‘말할 권리’는 별개로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 논리에서 경계선이 흐려지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의견의 다양성을 지나치게 제재하면 공론장이 기존 의견만 답습하게 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괴짜에게 과한 권위를 줄 수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대중매체는 비주류 의견을 가진 사람에게 어떤 방식으로 발언 기회를 줘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소셜 미디어 댓글창에서 이 구별을 놓치는 경우를 많이 봐왔기 때문에 공감이 가는 꼭지였다.


발췌

"올바른 사고는 믿음에 내재된 불확실성을 지나치게 부풀리지도 않고, 오류 불감증에도 빠지지 말아야 한다."

20p 민주주의는 다수결주의가 아니다. (...) 여론이 틀릴 수 있다는 걸 인정하면 참전 결정이 민주주의의 위반이라는 논리의 허약함은 단번에 드러난다. (...) 선출된 의원들은 유권자를 대신해서 결정을 내리는 대표자이지, 유권자의 말을 그대로 따르는 대리인이 아니다.

39p 세상의 질서를 파악하는 능력은 엄밀히 말해서 비논리적인 종류의 논증에 좌우된다. 귀납법은 특정한 경험으로부터 일반 원칙을 추론하는 방식이다. (...) 오해의 소지가 있는 특정한 경험을 근거로 과도한 일반화를 시도하려는 유혹을 거부하기 힘들 때도 있다. (...) 사람들의 반응에 상당한 편차가 존재한다고 알려진 상황은 일반화할 수 없다.

49p 논리적인 짜임새는 그 가설을 진지하게 고려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일 뿐이다. 좋은 가설이 되려면 그 이상이어야 한다. 즉 철저한 검증을 거쳐 어떤 현상을 경쟁 이론들보다 더 잘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 그러므로 단지 논리에 일관성이 있다고 해서 쉽게 현혹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

82p 양 극단의 확고한 시각을 가진 두 사람이 설전을 벌임으로써 진실이 왜곡되기도 한다. (...) 이런 식의 토론이(토론 참여자들의 입장이 양극단에 있을 때) 반복되다 보면 이 사회가 대립과 충돌, 커다란 반목의 골로 채워져 있다는 인상이 확산된다. 대다수의 입장인 절충과 중도 노선은 아무도 대변해 주지 않고, 균형을 잡는다면서도 엄연히 존재하는 의견들의 실질적인 균형은 반영되지 않는다.

99p '당위'가 '능력'을 함축한다는 임마누엘 칸트의 말로 거론되지만, 사실 그는 이렇게 간결하게 정리해서 말한 적이 없다. 원리 자체는 매우 자명하다. 어떤 일을 실제로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280p 넓은 의미에서 허술한 논증은 대부분 '불합리한 추론'의 변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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