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서
김사과
그간 인문 잡지들에서 세대론을 접하다가, 다음 읽을 책으로 <천국에서>를 고른 나 자신에게 박수를 보낸다.👏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이 조부모 세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당시의 역사·사회적 맥락을 고스란히 흡수한 인물로 묘사될 때, 잡지 <세대>에서 읽었던 내용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잡지 <세대>에서 세대론은 청년이 혁명의 주체로서 언제나 청년론이자 근대화론이었다고 했지만, 현재는 새로운 청년도, 새로운 근대화도 없을 것이라 예감했다.소설에서 주인공을 비롯한 청년들의 무기력 혹은 무감각함을 보며, 잡지에서 언급된 ‘새로운 근대화’가 없는 정체된 세상이 떠올랐다.

9·11 사건 당시 큰 파장을 일으킨 사진으로, 이와 관련한 내용과 기사의 일부가 소설에 인용되었다. 이 사진은 미국의 중산층 젊은이를 향한 사회적 증오 감정을 자극하는 계기가 되었다. 인용된 기사는 사진 속 그들과 우리(기성세대)가 다를 바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는 소설의 주제 의식이 드러나는 대목이었는데, 소설은 청년 세대를 직접 비판하기보다, 태생부터 자본주의에 노출된 청년들을 묘사함으로써 소비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그들을 비판하는 기성세대를 겨냥한다. 그래서 아래 발췌록의 첫 번째 문단이 주제를 가장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청년들의 무기력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둘러싼 구조적 현실을 비판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잡지 <세대>에서는 청년 세대의 보편성을 보여주지만, 케이는 소설의 주인공답게 대표성을 띠면서도 자의식이 민감한, 개별적이고 예외적인 인물이다. 많은 책을 읽진 않지만, 내가 꾸준히 소설을 읽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특히 <천국에서>는 핍진감이 뛰어나, 취향을 더욱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소설을 읽으며 웹툰 <한강예찬>이 떠올랐다. 소설에서 주인공 케이의 어린 시절 ‘잠실 친구들’이 언급되는데, 웹툰 역시 주인공과 친구들의 이야기가 중심이며, 이들도 ‘잠실 친구들’이다.
20세기 후반 이후 중산층은 잘게 부서져 양극단으로 끌려갔다(소설에서는 이렇게 표현된다). 케이와 마찬가지로 <한강예찬>의 주인공 또한 양극단 중 아래쪽으로 끌려간 사례다. 웹툰 속 주인공은 소설에서 묘사된 청년 세대처럼 소비, 상품, 취향에 몰두하지만, 변화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인물이다.
우연히 연이어 접한 두 작품이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발췌
“여전히 대다수의 젊은이들은 다가오는 위기에서 등을 돌린 채로 지속 불가능한 즐거움에 몰두하고 있다. 사람들은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그들의 멍청함을 비난한다.
하지만 엄밀히 따져봤을 때 그들이 다른 세대에 비해서 특별히 멍청한 것은 아니다. 일생을 미래에 대한 물질적인 비전에 동의했으면서도 그 비전의 결과로서 생산된 아이들 앞에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들의 멍청함도 그에 못지않다. 결국, 이 아이들은 그저 동시대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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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권태의 최종 해결책을 갖게 되었다. 자본을 통해 관리되며, 소비를 통해 가능한, 한계 없는 쾌락. 감수성은 하나의 거대한 시장이 되었고, 여행 산업은 이 시장의 핵심에 위치한다 (…) 사람들은 파산한 삶을 외면한 채 값싼 즐거움으로 도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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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열광의 지속이 불가능해질 때, 즉 더이상 환상을 유지할 수가 없게 되었을 때,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깨어나는 것을 거부한다. 그들은 깨달음 대신 냉소주의로 도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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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재현의 세계는 폭력적 차별로 가득 차 있었고, 그래서 차이는 곧장 증오로 이어지고, 결국 강한 쪽이 약한 쪽을 찍어누르는 방식으로 평화가 찾아왔다. 재현은 물론 약한 쪽이었다 (…) 그래서 대신 아버지가 원하는 것과 정반대의 방향으로 자신의 인생을 몰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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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민적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그들은 무엇을 했는가? 그들은 취향을 선택했다. 마치 속물들이 아파트와 자동차의 브랜드로 서로를 재듯이, 그들은 세련된 것들의 목록을 끝도 없이 늘리며 자신들을 방어하는 한편, 또한 벗어날 수 없는 자신들의 출신계급을 향해 무해한 공격을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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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에서 사람들은 불편한 진실을 가능한 외면하기 위해 노력한다. 매 순간 진실을 응시했다가는 일상은 파괴되고, 제정신으로 삶을 유지해나가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거짓말을 만들어내고 그 거짓말에 자발적으로 속아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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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반대라면? 자신이라 믿으며 살아온 그 긴 시간들이 아니라 우연히 포착된 기괴한 장면 하나가 자신의 진정한 본질을 보여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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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인간이라도, 그가 훌륭한 인격을 갖고 있는 인간이라 해도, 그 인간의 일상을 이십사시간 관찰한다면 남는 것은 혐오의 감정뿐일 것이다 (…) 남은 자들의 삶은 지속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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