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헤르만헤세

소설의 첫 문장

나는 그저 내 속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삶을 살고자 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것이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

마침 내 의지가 그 기회를 잡을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야

세계를 그냥 가지 속에 지니고 있느냐 아니면 그것을 알기도 하느냐, 이게 큰 차이지. 그러나 이런 인식의 첫 불꽃이 희미하게 밝혀질 때, 그때 그는 인간이 되지 

-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애쓴다. 알은 곧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

인간에게는 단 한 가지 의무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건 바로 자신을 찾고 자기 내부적으로 흔들리지 않고 그 길이

어딘가에 닿건 간에 자기 자신의 길을 더듬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개개인을 위한 진정한 소명은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 도달하는 것, 그것 한 가지였다.

-

돌이켜 생각해 보고 이렇게 한 번 물어봐요. 그 길이 정말로 그렇게도 어려웠던가? 단지 어렵기만 했던가? 그러면서도 아름답지 않았던가? 

당신은 과연 그보다 더 아름다우면서도 쉬운 길을 알고 있었을까요?

-

사람은 반드시 자신의 꿈을 찾아내야만 해요. 그러면 그 길이 쉬워지지요. 그렇지만 언제까지고 계속되는 꿈은 없어요.

모든 꿈은 새로운 꿈으로 대체되지요. 우리는 어떤 꿈에도 집착해서는 안 돼요.

→ 소설을 읽을 때 가장 반가운 문장은 내가 최근에 생각한 내용과 일치하거나 비슷할 때다. 요즘 현 목표뿐만 아니라, 계속 나아갈 수 있는 궁극적인 최상위 목표를 가져야겠다고 다짐한 상태였다.

-

우리 사명은 이 세상의 하나의 섬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이상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살아가는 데 다른 한 가지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임이 분명했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

그러나 가끔 열쇠를 찾아내어 어두운 거울 속에 운명의 형상이 졸고 있는 나 자신의 내면으로 완전히 내려가면 그 거울 위로 몸을 굽히기만 해도 그 사람과 완전히 똑같은,

내 친구이며 지도자인 그 사람과 똑같은 나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 — —

데미안 어원이 신, 수호자, 강한 힘이고 소설 속에서 '데미안'이 '자아'라면 마지막 장면에서 싱클레어는 드디어 강인한 내면을 지닌 자신이 된 걸까?
내가 좋아하는 불교용어가 떠올라 남겨본다.

수처작주 입처개진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잃어버리지 말고 주체적 인간으로 살면 무엇을 하든 그 하는 일과 자리가 모두 진실한 진리의 삶이다.

MORE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