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

디디의 우산>을 먼저 읽었지만, <계속해보겠습니다> 👉 <디디의 우산> 순도 좋았을 법 했다. 본문에 언급한 ‘제대로 생각해주지 않는다’가 디디의 우산에서 말하는 ‘묵자의 세계관’과 부합하고, 이게 디디의 우산에선 주제가 되기 때문!

발췌

“도저히 모르겠다고 생각하니까 그런 게 그 자리에 있는 거잖아. 아무도 제대로 생각해주지 않으니까, 그런 게 거기 있는 거고, 여전히 그렇게 하고 있는 거잖아. 그게 뭔지는 몰라도 그게 뭔지, 제대로 생각해야지, 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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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모세씨는 그 점을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았어. 요강을 채우는 사람과 요강을 비우는 사람이 따로 있는데 모세씨는 그것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생각할수록 나나는 그게 더 이상한 거야. 실은 그게 가장 이상하고 궁금해. 모세씨는 왜 그럴까. 모세씨의 아버지는 왜 그렇게 할까. 모세씨의 어머니는 왜 그걸 치울까. 세사람 사이엔 도대체 어떤 흐름이 있는 걸까. 그것은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에도 내내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잘 모르겠어. 어떻게 생각해?

모르겠네.
그래.
그 점이 핵심인지도 모르지.
그 점?
잘 모르겠다는 점, 하고 소라가 말합니다.

아무리 생각하고 들여다보아도 모르겠다, 싶은 것은 애초에 생기기를, 모르게 되어 있도록 생겼는지도 몰라. (…) 모르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하여간 핵심은 도저히 모르겠다는 거잖아.
(…) 바로 이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합니다. 소라가 모르게 된 이유, 소라가 보지 못하는 이유, 소라의 메커니즘.
(…)
도저히 모르겠다고 생각하니까 그런 게 그 자리에 있는 거잖아. 아무도 제대로 생각해주지 않으니까, 그런 게 거기 있는 거고, 여전히 그렇게 하고 있는 거잖아. 그게 뭔지는 몰라도 그게 뭔지, 제대로 생각해야지, 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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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목원에 가고 싶다는 대답은 대강이었는데, 대강의 대답을 듣고 이렇게 노력하는 서툰 사람, 사랑스럽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랑스럽지만 더는 안되겠다.
(…)
모세씨는 궁금한 적 없었나요, 라고 물었습니다. 아버지는 왜 요강을 남의 손으로 비울까, 어머니는 왜 남의 요강의 비울까, 그런 걸 묻고 대답을 듣고 싶었던 적이… 거기까지 말했을 때, 남이라뇨, 하고 모세씨가 말했습니다.
남이라고 할 수 있나.
남이 아니에요?
남인데.
가족인데.
가족은 남이 아닌가요?
남이 아니죠.
단호하게 말하고 모세씨는 포크로 찍은 당근을 입에 넣고 오독오독 씹었습니다.
(…)
남이 아니라니 모세씨는 진심인 걸까. 남이 아니라서 모든 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다 알고 있으니까 알 필요도 궁금하게 여길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
잊지 마.
내가 이렇게 아플 수 있으면 남도 이렇게 아플 수 있다는 거. 제대로 연결해서 생각해야 해. 그런데 이렇게 연결하는 것은 의외로 당연하게 일어나는 일은 아닌지도 몰라. 오히려 그런 것쯤은 없는 셈으로 여기며 지내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는 정도인지도 몰라. 그러니까 기억해두지 않으면 안돼. 안 그러면 잊어먹게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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