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태엽 오렌지
앤서니 버지스
"한 인간이 스스로 선택하는 것을 그칠 때, 그는 인간이기를 그친 것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알렉스를 패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히 생긴다. 그만큼 이 책의 주인공 알렉스는 쓰레기 오브 쓰레기로 온갖 나쁜 짓을 일삼는 최악의 쓰레기다. <시계태엽 오렌지>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명작이다. 뛰어난 피카레스크이기도 하다. 원작 소설보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로 더욱 잘 알려져 있다. 영화에서는 원작에서 묘사된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장면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때문에 감독이 도덕적으로 무책임하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지금 보면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다. 다만, 70년대 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당시 이 내용이 불러왔을 사회적 파장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어쨌든,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알렉스를 마구 때리고 싶어지는데, 바로 이 '폭력'이라는 수단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한다.
물론 나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감정이입하여 알렉스를 때려주고 싶은 거고, 알렉스는 자신이 저지르는 만행이 잘못인지조차 모르는 순수한 '악'이다.
이 녀석은 마음속 폭력성과 성적인 욕구를 여과 없이 드러낸다. (작품 속에서 그는 미성년자로, 미성숙한 인물로 묘사된다.) 작품에서 다루는 폭력은 개별적 차원을 넘어 체제와 권력으로부터 가해지는 폭력까지 포함한다.
알렉스는 결국 정부에 의해 인위적으로 교화된다. 그의 자유의지는 약물 요법을 통해 강제로 제어 당한다.
즉, 알렉스는 선한 일을 하겠다고 결심하거나 도덕적 가치에 감동받아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약물의 화학 반응으로 인해 어떤 선택도 하지 못한 채 기계적으로 반응하는 존재가 된다.
책의 제목처럼, 그는 이제 태엽을 감아야만 움직일 수 있는 인간, 선택의 의지를 박탈당한 ‘태엽장치’가 된 것이다.
여기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알렉스가 죽어 마땅한 인간이라는 사실과 별개로, 정부가 그에게 행한 실험이 과연 정당한가에 대한 질문이 던져진다는 것이다.
쓰레기 같은 짓을 일삼던 알렉스냐, 인간성을 무시한 채 사회정의를 위한다는 목적으로 실험을 가행한 정부냐와 같은 코너에 몰린다.
물리적 폭력 그 자체와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의 연관관계를 생각하게 만든다.
+) 영화는 책의 결말과 다르게 끝난다.
책에서는 느낄 수 없는 베토벤 교향곡과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장면들의 부조화가 영상을 더욱 폭력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또한, 70년대 작품답지 않은 감각적인 영상미 역시 영화의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요소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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