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이하의 날들
김사과
추려 내느라 애썼다. 장편소설 <천국에서> 에서 느낀 문제의식을 복습하는 듯, 시험지를 채점하는 듯한 기분으로 읽었다. 이런 생각에 기인해 소설엔 그렇게 표현된 거구나,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3부작 초국적 자본주의로 상징되는 페북, 구글 이야기도 재밌는데. 소설, 글쓰기에 관해서도. 다 담지 못해 아쉽다. 09-14년도에 블로그나 매체에 실은 글들을 엮은, 작가님의 20대가 오롯이 담긴 글이라 한다. 때문에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많고, 포커스를 잘 맞춰 쓴 느낌은 적다고 한다.
발췌
힙스터 현상은 뉴욕의 특정 지역에 모여 앉아 특정 음악을 듣고 특정 옷을 걸친 중산층 백인 젊은이들에 한정되는 국지적 현상이 아니다. 힙스터는 최신 소비자본주의가 잉태해낸, 최신 유행 목록으로 우회해서밖에 ‘나’라는 존재를 표현할 줄 모르는 이 시대 젊은이들의 극단적인 초상이다. 끊임없는 소비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파산해버리고 말 자본주의 씨스템의 근본문제를 온몸으로 표현해내는 순진한 어린애들이다. 그런 젊은이들은 비단 뉴욕뿐 아니라 도처에 널려 있다.
⠀
“문제는 내가 소설가라는 것이다. 내가 비난하는 세계에 나 또한 이미 깊숙이 속해있다. 그리고 이런 모순이 나를 냉소로 이끈다. (…) 더이상 소설은 보편적인 상상력이라는 과도한 책임을 떠맡으려 하지 않는다. 여기서 소설이라는 말을 예술로 바꾸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언젠가부터 예술은 보편성을 포기했다. 그렇게 자유를 얻은 뒤 거침없이 하찮아졌다.”⠀
⠀
“사람들이 이런 가학성을 솔직함과 혼동하고 예의를 가식이라며 경멸하는 이유는 예의와 가식이 어떻게 다른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것을 모르는 이유는 이 사회가 정치적 이해타산 너머의 인간관계를 상상할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단순화하자면 예의란 상대방을 배려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고, 가식과 위선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상대방의 몸매를 굳이 뚱뚱하다고 지적하고는 뻔뻔하게도 그런 무례한 태도를 솔직함이라는 이름으로 방어하는 이 가학성은, 스스로를 쓰레기의 차원으로 전락시킴으로써 나를 망쳐놓은 이 사회의 쓰레기 같음을 항변하는 유아적인 몸짓이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위악이다. 솔직함이 아니다. 위악자들은 끝내 솔직할 줄 모른다. 그러니 위선이란 결국 위악자들의 처세술이 아닌가.”⠀
-⠀
그러니까 힙스터란 무엇인가. (…) 그들은 어떻게 탄생했고 어떤 족속들이며 무슨 짓들을 하는가. 뉴욕의 n+1에서 펴낸 <힙스터에 주의하라>에 따르면 힙스터 문화는 1999년에서 2003년까지 왕성하게 태동한 하위문화를 뜻하며 2003년 이후 대중화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힙스터 문화의 기원은 인디, 보헤미아, 펑크 등으로 요약할 수 있는 80, 90년대의 반문화로 거슬러 올라간다. 반문화는 처음에는 급진적이며 반자본주의적인 성격을 띠지만 종국에는 상업화되어 ‘패션’이라는 종착역에 닿게 되었다. (…)⠀
⠀
누구보다 까다롭고 앞서 있는 소비집단으로서 이들은 모든 것에 대한 판단을 취향 판단으로 환원시킨다. 그들은 자신을 표현해줄 ‘힙’한 품목을 모으는 데 삶을 소비한다. 그리고 그 품목이 알려지는 순간 깜짝 놀라 도망치듯 다음 품목으로 옮겨간다. ⠀
힙스터의 세계에서 삶의 모든 영역은 패션이 되어버린다. 아니 새로운 패션을 위해서 현실을 악세서리화한다. 이것은 그들이 누구보다 하층계급의 스타일을 열심히 수집해온 것에서 잘 드러난다. 노동계급들이 마시는 맥주, 그들이 입는 옷, 빈티지에 대한 애호, 언뜻 이 모든 것은 타자에 대한 열린 태도로 느껴지지만 힙스터들은 오직 멋져 보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다. ⠀
MORE POSTS